'삼도수군통제영' 답사기행문 우수작에 통여고 김현지 학생

통영관광개발공사 ‘삼도수군통제영 답사기행문’ 심사 결과 발표

편집부 | 기사입력 2015/10/02 [14:25]

'삼도수군통제영' 답사기행문 우수작에 통여고 김현지 학생

통영관광개발공사 ‘삼도수군통제영 답사기행문’ 심사 결과 발표

편집부 | 입력 : 2015/10/02 [14:25]

통영관광개발공사(사장 이상균)는 통영 삼도수군통제영을 홍보하고 통영의 역사와 중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실시한 '삼도수군통제영 답사기행문' 심사결과를 발표했다.
 
수향수필 동호회에 심사를 의뢰한 결과, 최우수작은 선정하지 못했다. 대신 우수작에는 통영여고의 이현지 학생을 뽑았고, 장려상에는 가야초등학교 고병진, 통영여고의 황소현 학생이 선정됐다. 선정된 학생들에게는 문화상품권이 지급될 예정이다.
 
이번 '삼도수군통제영 답사기행문' 공모는 전국 학생을 대상으로 2015년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간 진행됐으며, 접수 작품은 삼도수군통제영에 대한 이해와 진실성, 문학성, 전달성, 활용가능성 등을 중심으로 심사했다.

통영관광개발공사 관계자는 "2016년에도 통제영의 역사성과 중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며, 앞으로도 전국의 많은 학생들의 관심과 참여를 당부했다.
 
다음은 우수작에 선정된 이현지 학생의 기행문 원문이다.
 
당신은 삼도수군통제영을 아십니까?

 
삼도수군통제영은 가까이 있지만 내게 먼 장소였다. 어느 날 다른 지역에서 오신 선생님께서 수업 시간에 삼도수군통제영이 뭐냐고 우리들에게 물어보셨다. 통영토박이인 우리들 중 누구도 삼도수군통제영에 대해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도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삼도수군통제영의 중심인 세병관을 초등학교 3, 4학년 때 백일장 대회 장소여서 간 이후로 한 번도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바로 우리 곁에 있지만 무관심했던 것이다.                                        

 오후에 집에 가서 인터넷 검색창에 ‘삼도수군통제영’을 검색어로 넣어 보았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삼도수군통제영은 의외로 간단했다. 수군을 통솔할 지휘관이 없어 왜적의 침입에 즉각 진입할 체제를 갖추지 못했고 연합함대를 구성한 후에도 각 선단간의 의견이 상충해 효과적으로 전국을 운영 할 수 없었기에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조선 선조 26년에 한산도에 군영을 설치했다. 그리하여 여러 곳을 옮겨 다녔던 삼도수군통제영이 선조 36년 6대 통제사인 이 경준에 의해 통영에 세병관을 비롯한 여러 건물들을 지으면서 삼도수군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수군을 통솔하는 해상방어 총 사령부의 터로 쉽게 말해 해군을 지휘하는 관청이었던 것이다.              

삼도수군통제영에 대해 알고 나니 이순신 장군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수군절도사로 임명된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7년간 27전 27승이라는 기록적인 전과를 올렸고 옥포해전, 사천포해전 그중 가장 으뜸인 적선 70여척을 격파한 한산도 대첩, 부산포 해전 등이 있다. 이후 여기서 주가 되는 삼도수군통제영의 통제사가 되었고 이후 거짓정보에 속아 조정은 이순신을 파면시켰고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그 후에 원균이 칠천해전에 패하자 다시 수군통제사로 임명되었고 이때 고작 12척의 전함을 이끌고 133척을 격파시킨 명량해협에서 기적을 일으켰다. 영화 ‘명량’을 통해 이순신 장군의 활동과 업적을 영상으로 보았지만 우리 통영과 연결시키지는 못했는데 이번을 계기로 이순신 장군의 활약과 통영의 역사를 잘 알 수 있었다.                                                             

검색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 주말을 맞아 삼도수군통제영에 갔다. 오르는 길에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나타내는 깃발을 볼 수 있었다. 깃발을 지나 매표소가 보였고 전에 내가 갔을 적엔 달랑 세병관 하나뿐 이었는데 이렇게 복원이 되어 통제영의 여러 가지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기쁘기도 했고 새삼 낯설기도 했다. 내가 무심했던 7,8년 동안 새 단장한 이곳이 문화재로서, 국보로서 엄연히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면서 기분이 좋았다. 표를 끊고 망일루를 오를 때 계단 왼쪽 편으로 중영이 보였다. 중영과 좌 행랑, 우 행랑, 결승 당, 응수 헌, 중용부속 채, 중용외삼문이 있었다. 망일 루를 지나 왼쪽으로 산성청이 있었다. 산성청안에는 삼도 수군통제영의 배치 축소 모형도 담겨있었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세병관 외에도 많은 관아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망일루는 일명 세병문이라고도 하며 통행금지와 해제를 알리는 커다란 종이 있어 종루라고도 한다. 망일루의 오른쪽으로 좌청과 수항루가 있는데 좌청은 군관과 사병이 대기하던 곳으로 대변좌청이라고도 한다. 수항루는 2층 누각으로 통영 성 남문 밖에 위치하였는데 임진왜란의 승전을 길이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당시 왜병으로부터 항복받는 행사를 거행했던 곳으로 전쟁의 승전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이러한 행사를 한 것 같다. 잠깐 올라가서 발을 디뎌 보았는데 높은 곳에 서있는 그 느낌이 괜찮았던 것 같다. 좌청을 지나 수항루에 가기 전에 두룡포 기사비도 자리하고 있었다. 두룡포 기사비는 두룡포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한 이경준 통제사의 치적을 기록한 ‘이경준 사적비’로 인조 3년에 구인후 통제사가 세웠다. 두룡포는 원래 작은 포구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경준이 이곳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옮겨옴으로써 전략적인 요충지가 되었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두룡포 기사비 앞에 선 나도 왠지 모르게 숙연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세병관으로 향하는 지과문으로 올랐다. 지과문으로 향하는 계단은 가파랐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정말 넓은 세병관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세병관을 바라보니 어릴 때 기억이 떠올랐다. 추운 겨울, 넓은 바닥에 앉아 옹기종기 모여 앉은 초등학생들 사이에 내가 보였다. 손이 시렸지만 얼어가는 내 손은 연필을 놓을 수가 없었다. 손을 호호 불어가며 백일장 대회에서 글을 쓰던 초등학생이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다시 이곳을 찾았다. 한창 더웠던 여름을 지내고 살랑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기분 좋은 지금, 내 주위에는 잠시 동안 누워서 쉬고 있는 아저씨도 보였고 마루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도 있었고 나란히 앉아 잠시 담소를 나누는 커플도 볼 수 있었다. 그 틈에 끼여 앉아 이제는 사람들의 좋은 쉼터가 된 이곳을 눈에 담았다.                                                    

세병관은 국보 제 305호로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조선시대 목조건축물 중에 바닥 면적이 가장 넓은 건물의 하나이다. 또한 목조건물로서 바깥으로 통로가 만들어져 있고 안으로는 분합문이 들려져 있다. 임금의 궐패를 모시고 있는 곳으로 이곳에서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하여 예를 올렸다고 한다. 세병관에 가게 된다면 조선시대 목조 건축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는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세병관’이라는 이름에 대한 유래가 궁금했는데 세병관은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 ‘세병마’에서 가져온 것으로 현판의 한 글자의 크기가 2m나 되는 세병관이라는 글씨는 136대 통제사인 서유대의 글씨라고 한다. 그 글씨를 보고 있으면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당시 사람들의 마음이 몸소 느껴지는 것 같다.                                                                          

세병관의 왼쪽으로 12공방이 자리하고 있는데 12공방은 통제영에서 필요한 군수품과 조정에 올리는 진공품에 국한되었었지만 통제영이 점점 크게 번성하자 부채, 장식, 자개그림, 가죽, 철물 등 다양한 생활용품까지 만들게 되었다. 12공방에는 부채를 만드는 선자방, 갓을 만드는 입자방, 상자류를 만드는 상자방, 가구를 만드는 소목방, 옻칠을 하던 칠방, 각종 철물 및 병기를 만드는 야장방, 자개를 붙여 나전칠기를 만드는 패부방 등 다양한 공방이 모여 있었다고 한다. 통영하면 떠오르는 나전칠기 또한 12공방으로부터 나오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는데 새삼 뿌듯하기도 했다. 소목방은 나무로 가구 및 문방구 등을 만들던 곳으로 중요무형 문화제 제 55호로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 소목장 김금철이라는 분을 만났고 친절하게 제작 과정을 일일이 설명해 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다. 다양한 나무로 가구를 만든다는 것이 간단하게 보이지만 제작 과정을 들어보니 순탄하지는 않았다. 복잡했고 수작업으로 하나하나 만들어 붙인다는 것 자체가 정교했고 깔끔했다. 그 문양 하나하나에 정성이 보였고 통영만의 특색이 보였다. 그리고 재료인 나무를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시키는 작업으로 느껴져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12공방을 지나 내아군으로 가는 길에 한창 행사 중인 백화당을 보게 되었다. 마침 남해안 별신굿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게 무엇인가 알아보니 중요무형문화재 제 82호로서 마음의 평안을 기원하는 제의로 남해안 지역에 전승되는 마을굿이라고 하였다. 국악 소리에 맞춰 한복을 입은 여인이 춤을 추는 모습은 정말 예뻤다. 손동작 하나하나에서 우러나오는 섬세함은 우아했고 기품 있었다. 행사를 보는 사람들도 숨을 죽이며 지켜보고, 나도 모르게 남해안 별신굿 공연에 빠져들고 있었다.           

백화당을 지나서 내아군으로 향했다. 내아군은 통제사가 업무를 보던 영역으로 세병관의 오른쪽인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내아군 내에는 운주당과 이순신 장군의 영당이자 관사인 경무당이 자리하고 있고 그 우측으로 살림채인 내아가 자리하고 중앙의 관아와 달리 지방의 관아에서는 관리의 식구들이 살림하는 내아가 있어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이 공존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내아군에 들어서자마자 왼쪽부터 돌게 되었는데 첫 번째 만나게 된 것이 병고였다. 병고에선 병무를 관장하던 곳으로 대포, 창, 검, 무기류가 전시되어 있었다. 그 다음으로는 운주당을 보았는데 군막 속에서 전략을 세운다는 뜻으로 통제사가 통제영 군무를 보는 집무실이다. 통제사의 모형과 가구와 의복이 함께 전시되어 그 시절 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경무당은 통제사의 작은 집무실인데 경무당이라 한 것은 이 충무공의 뜻을 크게 우러러 본다는 의미에서 연유했다고 한다. 경무당으로 발을 들여 안으로 들어서 보니 이순신 장군의 업적과 삼도수군통제영의 역사적 의의나 주요 건축물 역사에 관한 글이 나열되어 있었다. 또한 한산 해전에 관한 영상도 볼 수 있도록 자리 잡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 본 것이 내아로서 통제사가 거처했던 곳이다. 내아는 지방 관청의 안채에 해당되고 안방, 대청, 부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은 곳이 부엌이었다. 오늘날의 부엌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지만 가까이서 보니 더 신기했다. 그릇이나 옹기, 바구니가 전시되어 몇 백 년전의 과거가 생생하게 다가 왔다. 내아군을 나와 마지막으로 둘러 볼 곳인 주전소로 갔다. 이 여정의 끝이 다가오는 것 같아 많이 아쉬웠다. 통제영 주전소지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견된 주전소 유적이다. 이곳에서는 조선 후기에 생산된 화폐가 출토되었을 뿐만 아니라 주전소 건물지와 주전에 사용되었던 각종 도구들이 출토된 곳이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주전소에는 작은 모래알 위에 화폐나 각종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시절 화폐의 개념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통영에서 태어났고 통영사람으로서 삼도수군통제영에 대해 누구에게나 떳떳하게 설명해 주지 못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삼도수군통제영에 대해 확고한 지식이 없었는데 이번을 계기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누구에게나 떳떳하게 삼도수군통제영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통제영을 둘러보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삼도수군통제영이 등재되기 위해 통영시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통영시민들도 힘을 보태 하루빨리 삼도수군통제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면 한다. 삼도수군통제영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고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옛 모습을 간직한 통제영의 아름다움과 조상들이 물려준 재산을 우리가 잘 지키고 가꿔나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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